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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의 회고
4년의 회고
어쩌면 하루만에 비공개로 돌릴 수 있는 회고이다.
이제껏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내 대학과 개발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4년간의 회고를 해보는 양아치짓을 저질러 보고자 한다. (진작 하지 않은 원죄로..)
대가리 꽃밭 자율전공생
사실 홍대로 대학을 들어오게 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향수 디자이너가 되고자 들어왔었다.
그리고 산업디자인과에서 1년을 즐겁게 보냈다. 평생 가고 싶은 친구들도 만나고,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았다. 실기실에서 밤새다가 본 홍대 클럽의 향기, 처음 해보는 미팅, 연애, 소개팅, 술자리,친구와 해외여행, 아르바이트 등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재밌었다.그러다가, 2학년이 되는 시점에 , "자율전공" 이라는 타이틀을 산업디자인과에 올빵하기에는 아쉽다 느껴 한번 도전을 해보았고, 그것이 경영학과였다.
애시당초 주전공으로 산업디자인과를 선택해놓았고, 자율전공은 5년 다니지! 라는 생각에 여유로웠기 때문에, 문과에 대한 동경과 어느정도 현실 감각을 위해 선택한 내용이었다. (항상 세상 감각이 없던 것 같아 상식을 채우고 싶었다.) 놀랍지 않게 아주 재미없었다. 학창시절에 문과 수업을 다 자놓고선 이게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2학년 2학기, 산업디자인과 들어가기 전에 살짝 남은 이과머리로 점수나 따보자 심정으로 씨프로그래밍 수업을 선택했고, 이것은 결정적으로 맨날 조럽모태ㅠㅠㅠㅠ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컴공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된다.
꼬마 독수리
나는 영타 27타였다. 씨프로그래밍을 선택하고 알게 된거가, 실습이 다 코드를 따라치는 건데, 나는 영타가 너무 느렸다. (지금은 빠르다!) 독수리마냥 자판을 하나 하나 손가락으로 누르는 날 보고 변영태교수님은 엄청 즐거워하셨고, 항상 "우리 독수리!!!" 라고 부르시면서 관심을 가져주셨다.
재밌었다. 코드도 재밌고, 교수님도 재밌고, 내 상태를 보고 심각성을 느낀 컴공 선배들이 제발 모르겠으면 질문을 하라고 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남들이#include쏼라쏼라 치고 있는데#하나 치고 헤실헤실 웃는 바보 학생은 모두에게 위협을 준 것이다.)
다들 너무 친절하고, 디자인에서는 100시간 들여도 항상 뭐가 답일까 고민하고, 뒤엎고, 다른 사람에 평가에 계속 수정하고, 크리틱 전 날에 장꼬임 약을 항상 먹었던 것 같은데, 여기는 와 과제끝! 이라는 게 있는게 좋았다.
연봉, 돈 이런거 사실 몰랐다. (여전히 잘 모른다.)
그냥 이런걸 평생 하면 재밌다."내가 이분야에서 제일 잘하지 않아도, 돈을 적게 벌어도 이거 평생 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그냥 무모하게 컴공으로 아예 알박기를 시전해버렸다. ( 이 초심을 잊지 않고자 항상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드문드문 만난 친구들이나 내가 무슨 과인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엄청 늦게서야 사실 컴공이 되었다라고 말했을때, 다들 놀랐다.
노답 3학년
3학년생이 갑자기 씨프로그래밍 하나 듣고 주전공 컴공으로 알박기를 하니, 역시나 노답이었다.
친한 산디 동기의 4학년 컴공 선배가 내 노답 시간표를 보고, 그러면 죽는다고 연락이 왔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때 선배들한테 많이 배우고, 많이 받았다. (이 선배들 덕분에 첫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를 하게 되고, PEM 연구실 에 가는 계기가 된다. )
늦게 시작했다보니, 항상 내가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중요성 그거 딱하나 알고있었던 상황이여서 어떻게 하면 더 개발 경험을 늘릴 수 있을 까 고민을 했고, 그 때 열렸던 피로그래밍 동아리에 들어갔던 것 같다.
피로그래밍
처음 느낌은 재수학원같았다. 다같이 앉아서 강의를 듣는 것이었고, 다 들으면 집에 갔다. 처음 들었던 강의는 HTML 이었다. 웹개론까지만 재밌고 뒤에는 재미가 없었다. 프론트는 내 체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쳤어야 했지만, 그때는 프론트, 백 개념도 없었고 그냥 아 나 개발 못하는구나를 깨닫고 많이 슬펐다..이미 노답으로 자율전공에서 컴퓨터공학을 선택했는데, 내 인생 어떡하지.. 앞으로 프로젝트가 있다는데 팀플에서 내가 남들을 괴롭히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주였다.
그러다, 프로그래밍 언어 시간에 접했던 파이썬을 공부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고, 장고로 나름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도메인도 연결하고 https 까지 다니까 두려울게 없었다.
게다가 처음 했던 프로젝트때문에 강남까지 오가면서 한이음에서 배웠던 깃을 쓰면서 나름 깃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이트 하나정도야 그냥 시간이랑 노가다만 넣으면 된다고 초심자의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장고로 외박계 사이트하나 조그맣게 만들고, 연구실 용으로 웹 하나 만들고, 외주를 찾던 중, 플랫폼 외주를 하게되었다.
일종의 터닝 포인트, 플랫폼 외주
많이 배웠다. 이렇게 길고 진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적이 없다. 일에 진심이고, 친구들이랑 한다는 그 재미 하나로 오래 버텼다.
수업듣자마자 쪼르르르 기숙사에 달려가 1시간 몬스터 헌터 하고 그 이후로 밤 11시 스크럼 회의까지 학교 과제 제외 계속 외주에 매달렸던 것 같다.
멋진 사람들이랑 멋진 목표를 향해 일한다는 것이 재밌었다.
일하는 것의 재미를 알게된 기회였다. 아마 지금 다시 어떤 외주를 하던 느끼지 못할 감정이다.
이때쯤, 아마 넘파이, 머신러닝같은 것들을 틈새로 공부했지만, 내 삶의 중심은 외주였다.
나라는 사람을 믿고 외주를 주셨기 때문에 기한 내에 좋게 완성해 좋은 평가를 받고 싶었다.그리고 하나의 사업을 위해 사이트를 만든다는 자신감이 내 삶의 원천이었다.
이 당시 배운 것은 협업하기, 인생은 다양한 과목으로 이뤄져있다. 스택에 익숙해지기 등이었다.
미치도록 행복했다.
플랫폼에서 스타트업으로
외주가 사업이 되었다. 군대때문에 사업에 일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워 무조건 억지를 부려 휴학을 해버렸다.
나도 이제 회사원 현직 개발자다!
많은 일이 있었다. 1년 조금 덜되게 희로애락을 다 느꼈던 것 같다.
마지막은 어색한 안녕을 고했지만, 아주 승승장구 하는 것 같아서 속으로 몰래 응원하고 있다. 내가 나온걸 후회할 정도로 더 잘나갔으면 좋겠다. (어차피 회사분들은 이 블로그의 존재를 모르니.. )
그 동안 나는 분명히 성장했고 23살, 24살의 척추 한 마디 정도가 거기에 박혀있거든. 많이 배웠다. 회사의 흐름을 진짜 배웠고,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공부를 어떻게 무엇을 해야하는지,내 부족함이 뭔지를 알게 되었고 덕분에 항상 철없던 내가 성장했다.(아직 삐약이지만.. )
부족한 나를 이만큼 믿고 성장시켜줬는데, 그걸 갚을 길이 없어 아쉽다.
이 길을 선택하고, 이렇게 큰 기회를 받아 크게 성장하는 은혜를 받았는데, 큰 은혜를 이렇게 받기만 해도되는걸까. 어떻게 이 은혜를 갚지를 진심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학교로
학교로 돌아왔다. 이제 4-1. 지금 돌아온 이유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적어도 보수적인 관점에서 26살 전에 졸업을 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리고, 항상 컴퓨터공학에 대한 결핍이 있어서 지식을 채우고 싶었다. 그리고, 9개월의 개발 경험은 개발자로서의 "난 뭘 하던 구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차있는 상태였다.
잦은 알바, 사생회, 층장, 외주, 스타트업 경험은 멀티 인간으로 성장하는 경험이었고,그래서 학업을 정상적으로 유지하면서 다른 외주, 부가 인턴 , 프로젝트, 등등을 할 수 있었다.
디자인 패턴을 공부하겠다고 자바를 시작했다가 갑자기 인턴까지 가서 스프링도 써보고, 코틀린, 앱, ml 등을 접했다. 아 할 얘기가 너무 많다.
디투오 인턴에서는 명세와 애자일 문화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훌륭한 명세가 있다면,어떤 실력을 가지던지, 같은 형태로 작업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스프링을 써보는 것은 프레임워크의 작동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였다. 아직 고수가 아니지만, 장고만 썼더라면, 아마 2021년 전에는 작동방식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같다. 그리고 메모리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깨우치는 기회였다.
ml 은 할말이 너무 많지만, 일단 연구실에서 "3일 취식하면 뭐가 나오는구나" 랑 데이터 처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다. 그리고, 좀 더 내가 똑똑해야하는구나. 내가 한 선택이 5시간 지나고 결과가 나오는 것에서 애틋함과 컴퓨터를 2대나 해먹으면서 "인생..."이라는 현타를 느꼈다. 계속 끈기를 넣어야 뭔가 나오는 것과, 더 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취준때문에 쉬고있지만, 애저 automl 시도까지 해보고 있었는데, 더 좋은 성과를 내고 싶었는데, 시간이 항상 부족한 것 같다.
코틀린은 fun 하다! 재밌는 언어여서 하하하하하 하면서 배웠다. 요즘 안써서 다 까먹었지만, 다시 시작해도 재밌게 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자꾸 어색해서 말 못하는데, 로드밸런서라던지 스케일 아웃, 스케일 업, 도커등에 대해서도 더 공부했다. (현업에서 써야 나 썼다! 라고 말할 수 있는건가 난 아직도 뭘 내가 할 줄 알아! 라고 말하는 것이 다 어색하다. ). ausg 에서 aws 다른 기능들도 구경했다. 아직 여유가 없어 파진 않았지만, 아마 자격증을 취직하고 딸 것 같다.
그리고 블로그를 시작했다. 아마 패스트 캠퍼스 인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백기선 자바 스터디를 하고, 에프랩에서 이런 순으로 블로그에 익숙해지고, 블로그를 엄청 좋아하게 된 것같다. 마크다운이 좋은건지 블로그가 좋은 건지 모르지만, 이 글이 남게 된다는 사실이 좋다. 그리고, 내가 받았던 그 도움들을 어떤 누군가한테 나도 보답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좀 더 잘쓰고 싶다.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구글링이 답인줄 알았던 순간이 있었지만, 요즘은 책도 구글링 못지 않거나, 더 좋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작가의 큰 흐름에 정수가 담겨있다. 구글링이 단편 책 1쪽이라면 책은 흐름이 담겨있는게 좋다. 같은 맥락으로 도큐먼트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감각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 몸부림쳤던 것일 수 있다. 그 열정, 코드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연구실 사람들과 학교 사람들이 잘 놀아줬다. 덕분에 다시 "응애 나 아기 학생"으로 돌아갔다. (4학년 길재은 양심도 없지)
갑자기 세상을 이롭게 만들자는 뽕에 취해(그 당시 배트맨을 너무 많이 봤다) 배리어 프리 가디언즈 오브 818 이라는 팸을 만들어 방학 내내 연구실을 다니면서 놀고 먹으면서 배리어 프리 프로젝트를 2개 했던 것같다. 아 학교 너무 좋아해서 큰일이다. 졸업이 믿기지 않는다. 졸업은 해도 문제 안해도 문젠거같다.
험난한 취준
왜냐면 하나하나 전형이 2개월씩은 걸린 기분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하고 싶어했던 적도 있었기에 내가 공부했던 것을 정리하는 과정도 좋았지만,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일정을 잡고 가 다 2주씩이다 보니 길어지는 전형에 힘들었다. 안바쁜데 안여유롭고, 약속이 없지만 약속이 있었다. 모든 취준생은 위대하다.
경력직으로 쓸지 신입으로 쓸지 인턴으로 쓸지 매 접수마다 고민을 하다가 웹일 경우, 자신감에 찬 날 경력직에 썼고,자신감이 없거나 직군이 웹이 아닌경우 날은 신입으로 썼다.(이렇게 살면 안된다.)인턴은 안썼다.
경력직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회사는 리딩 개발자를 찾는 과정을 경력직으로 써놔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적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골때문에 골머리를 썩었었다. 물론 취준이라고 부르기 시작 전부터 고생했지만,알골 스터디를 꾸준히 했다. 강의도 사서 봤고, 책도 샀고, 시간 복잡도를 공부를 했고, 남들 한다는 건 다 했다.
cs 공부 또한 스터디를 만들어 했다. 유명한 cs 면접 레포 3개의 키워드를 엑셀로 정리해 다같이 챕터별로 공부를 한 후, 면접관이 되어 서로 질문해주는 구조는 cs 면접 대비에 아주 탁월했다.
혼자보단 여럿이 공부, 일이 더 재밌고 낫다고 믿고 있다. 혼자선 단거리로 빨리 갈 수 있지만, 여럿이면 더 멀리 간다.
취업이 어쩌면 장기전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전 알골 스터디장님의 꿀팁대로 cs 스터디를 만들어 용케 열심히 운영을 했다.
(사실 나보다 팀원들이 더 열심히 참여한 것 같다. 팀원들이 이 과정에서 취업에 성공해 졸업해나가는 것을 보며 희망을 얻었다. )
그리고 면접을 보면서 느낀점은
결국에 러브레터 같은 이력서를 보내고, 시험을 치고, 면접을 보는 모든 과정 자체가 결국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적당히 단어를 던졌을 때, 빡 이해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깨닫고 좀 더 이후 면접을 수월하게 쳤던 것 같다
( 머리론 깨우치고 마음은 깨우치지 못해 청심환을 1면접 2병 했다. )
나는 취업을 어디로 했을까
나는 네이버 검색 쪽의 데이터엔지니어로 취직을 했다. 아마 연구실에서의 유사 ML 경험과 다른 웹개발이라던지의 개발 경험을 좋게 보신 것 같다.
그 이전에 합격한 곳을 전부 이야기 해보자면, 가비아, 카페24에 최종합격을 했다.
카카오 엔터프라이즈 프리인터뷰, 삼성 디스플레이에 코딩테스트를 합격 후, 모든 전형이 끝나기 전에 네이버에서 최종합격을 했기 때문에 전형을 계속해볼까 고민을 하다가 네이버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가끔 그 일상을 일기로남아 남겨보려한다.
2년차 3년차, 5년차, 10년차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 즐거움과 노력을 잊지 않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초심을 잊지 않고 나의 데굴데굴 구름기와 선배, 교수님들의 따듯한 가르침을 기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따듯하게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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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엔지니어로서의 성장기를 보다 새로운 마음! 으로 시작하고자 새로 블로그를 팠다.
처음 그 초심을 살려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할 예정이다.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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